[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2
: 산보
산책(散策)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산보(散步) : 바람을 쐬거나 쉬기 위하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리저리 거니는 일
흔히 ‘산책’은 우리 한자말로 여기고, ‘산보’는 일본 한자말로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산책’이라는 한자말을 즐겨쓰고, 일본에서는 ‘산보’라는 한자말을 즐겨씁니다. 그런데 두 나라에서 이 한자말을 즐겨쓴다고 하지만, 우리는 예부터 ‘산책’이 아닌 ‘마실’이나 ‘마을’이라는 말을 널리 썼어요. “마실 가다”나 “마을 가다”나 “나들이 가다”라 했습니다.
조선 무렵에 글바치는 언제나 한문으로 글을 썼어요. 이들은 ‘마실·마을·나들이’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자말 ‘산책’을 썼어요. 이러다가 총칼나라 일본한테 억눌리던 무렵에 일본사람이 널리 쓰는 ‘산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그무렵 한문 아닌 우리말로 글꽃을 지피던 사람들은 ‘마을·마실·나들이’ 같은 낱말로 글을 썼고, 이 물줄기는 가늘지만 곧게 흐릅니다. 이동안 ‘동(洞)’이란 한자가 끼어들어 ‘마을’이란 이름을 ‘동·동네’로 바꾸어 버렸습니다만, 새삼스레 ‘마을 짓기’나 ‘마을 가꾸기’가 꿈틀거리고, 서울 한복판에서도 ‘두레’를 하는 곳이 하나둘 싹틉니다.
더 생각해 본다면, ‘산책·산보’란 ‘걷기’를 가리켜요. 따로 이웃마을이나 옆마을로 가는 일까지 아니라면 ‘걷다·거닐다’라 하면 됩니다. 어디로 갈 뜻이 아닌, 가볍게 나서는 길이니 “길을 나선다”라든지 ‘다니다·돌아다니다’라 해도 어울려요.
가볍게 ‘마을·마실·나들이’입니다. 산뜻하게 ‘걷다·거닐다·다니다·돌아다니다’입니다. 남녘에서는 ‘산책’을 여태 못 털고, 북녘에서는 ‘산보’를 아직 못 터는데, 앞으로는 홀가분히 마실하고 상큼하게 걸으면 좋겠습니다.